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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 소리

라틴어에서 ‘첫 번째 시간’은 1시일까, 아닐까?

듀오링고 라틴어에서 만난 prima hora는 정말 1시일까요? ‘첫 번째 시간’이라는 표현을 통해 고대 로마인의 시간 감각을 가볍게 들여다봅니다.

듀오링고를 하다가 멈춘 문장

라틴어 문장을 번역은 할 수 있는데,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그림
번역은 되는데 해석이 안 되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요즘 취미로 듀*링고를 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하루에 조금씩 새로운 표현을 배우는 일이 생각보다 소소한 재미가 있더라고요.
특히 어원을 하나씩 알아갈 때의 만족감이 꽤 큽니다.

“아, 이 단어가 여기서 나온 거였구나.”

이런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작은 지적 허영심이 채워지는 느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꽤 중독적입니다!

 

그러다 라틴어 문장 하나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Ante primam horam Marcum excitatis.

영어로는 대략 이런 뜻이 됩니다.

You wake up Marcus before the first hour.

그런데 이상하게도, 낯선 표현입니다. 번역은 쉬운데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눈에 걸린 표현은 primam horam, 즉 the first hour였습니다. 이런말을 영어에서 쓰나요? 1 O'Clock 이렇게 쓰지 않던가요?;;

 

그런데 곧바로 의미가 이상해졌습니다.

“마르쿠스를 1시 전에 깨운다”는 뜻이라면 너무 이른 것 아닌가요.
새벽 1시 전이면 거의 한밤중인데요. 아무리 로마 시대라도 너무 이른 시간에 매정하게 사람을 깨우면 안 되지요...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이 표현이 정말 현대식 ‘1시’를 뜻하는 걸까?
아니면 고대 로마 사람들은 시간을 조금 다르게 말했던 걸까?

 


알고 보니 ‘첫 번째 시간’은 1시가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prima hora는 현대식 1시가 아니라, 고대 로마식 시간 체계에서 일출 이후 시작되는 낮의 첫 번째 시간대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고대의 hora는 자연일, 즉 일출부터 일몰까지의 낮을 나눈 시간 개념과 연결되어 있었고, 이 시간은 계절에 따라 길이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ante primam horam은 단순히 “1시 전”이라기보다,

첫 번째 낮 시간이 시작되기 전

에 가까운 표현입니다.

 

이걸 알고 나니 문장이 갑자기 훨씬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마르쿠스가 새벽 1시에 끌려 일어나는 장면이 아니라,
아직 해가 뜨기 전의 어슴푸레한 시간에 누군가 그를 깨우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했던 문장이, 배경을 알고 나니 오히려 너무 타당해진 것입니다.

현대식 1시와 일출 이후 시작되는 고대 로마의 첫 번째 시간을 비교한 그림
고대 로마의 ‘첫 번째 시간’은 현대식 1시와 같은 뜻이 아니었습니다.

 

시계가 아니라 태양으로 시간을 본다는 것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시계로 생각합니다.

1시는 1시이고, 6시는 6시입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한 시간은 언제나 60분입니다.

너무 당연해서 평소에는 거의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의 시간은 지금처럼 균일한 숫자 칸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태양의 움직임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해가 뜨면 낮이 시작됩니다. 해가 지면 낮이 끝납니다.
그 사이를 나누어 첫 번째 시간, 두 번째 시간, 세 번째 시간이라고 부르는 방식은 생각해 보면 꽤 자연스럽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12시간이 지나간다고 보았고, 낮에는 해시계, 밤에는 물시계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 시간의 길이도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름에는 낮이 기니까 낮의 한 시간도 길어지고,
겨울에는 낮이 짧으니까 낮의 한 시간도 짧아집니다.

현대의 시간은 계절과 상관없이 똑같이 흐르지만, 고대의 시간은 자연의 길이에 맞춰 조금씩 늘어나고 줄어드는 셈입니다.

이걸 알고 나니 prima hora라는 표현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습니다.

고대 로마인의 첫 번째 시간은 시계 숫자 1이 아니라,
하루의 빛이 막 시작되는 첫 번째 조각에 가까웠습니다.

 


단어의 뜻은 맞는데, 떠올린 세계가 달랐다

문장을 아주 간단히 나누어 보면 이렇습니다.

라틴어의미
Ante ~전에
primam horam 첫 번째 시간을
Marcum 마르쿠스를
excitatis 너희가 깨운다

직역하면 이렇게 됩니다.

너희는 첫 번째 시간 전에 마르쿠스를 깨운다.

문법적으로는 “첫 번째 시간을”이라는 뜻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첫 번째 시간”이 현대식 1시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묘하게 기분 좋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단어의 뜻을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가 떠올린 세계가 달랐던 것입니다.

같은 시간을 형상화 하더라도, 저는 시계를 보고 있었고, 고대 로마인은 아마 하늘을 보고 있었던 거죠.

 

이 차이를 깨닫는 순간, first hour라는 표현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 당연한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계가 없는 세계에서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였을 테니까요.

스마트폰 라틴어 학습 화면과 노트에 prima hora가 표시된 따뜻한 책상 장면
라틴어 문장 하나가 고대인의 시간 감각으로 이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상한 표현이 자명해지는 순간

처음에는 first hour라는 표현이 낯설었습니다.

왜 첫 번째 시간이라고 하지?
그냥 1시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시계가 없던 시대라서 그런 표현이 생긴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나니 오히려 이 표현이 너무 자명하게 느껴졌습니다.

동쪽 하늘이 밝아지고, 빛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간.
그때부터 낮이 시작된다면, 그 첫 구간을 prima hora, 첫 번째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걸 알게 된 순간이 묘하게 짜릿했습니다.

대단한 지식을 얻은 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보였던 표현 하나가 갑자기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순간만큼은 라틴어 단어 하나를 외운 게 아니라,
아주 잠깐 고대 로마인의 눈으로 하루를 바라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물론 “고대인에게 일출 이전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밤의 시간도 분명 중요했을 겁니다.
감시도 있었을 것이고, 의례나 생활의 준비 시간도 있었겠지요.

다만 적어도 prima hora라는 표현 안에는, 현대식 시계보다 태양에 더 가까운 시간 감각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참 재미있었습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단어를 외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다른 시/공간의 감각을 잠깐 빌려 보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라틴어의 첫 번째 시간은 1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계가 아니라 태양으로 하루를 이해하던 사람들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작은 발견 때문에, 저는 오늘도 듀*링고를 조금 더 켜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자료

  • William Smith, A Dictionary of Greek and Roman Antiquities, “Hora” 항목: 고대의 hora, 자연일 12등분, 계절에 따른 시간 길이 차이에 대한 설명.
  • Encyclopaedia Britannica, “12-hour clock”: 고대 로마의 낮 12시간, 밤의 구분, 해시계와 물시계 사용에 대한 설명.
  • William Smith, A Dictionary of Greek and Roman Antiquities, “Horologium” 항목: 고대의 해시계와 물시계 등 시간 측정 도구에 대한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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